[자료사진=연합뉴스]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확대 재지정 이후 서울 아파트 시장에 뚜렷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전체 평균 매매가는 크게 하락했지만, 강남구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가격이 급상승하며 지역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신축 아파트 가격 급등으로 인한 '풍선효과'와 재건축 단지에 대한 선별적 수요 집중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26일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등록 시스템을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토허구역이 재지정된 이후인 지난 3월 24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남구의 평균 매매가격이 43억817만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는 서울시가 토허구역을 일시적으로 해제했던 지난 2월 12일부터 3월 23일까지의 평균 거래가 26억6천38만원과 비교해 무려 61.9%나 급등한 수치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상승폭이 토허구역 해제 이전 기간과 비교해서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토허구역 해제 전인 지난 1월 4일부터 2월 11일까지의 강남구 평균 거래가는 26억9천92만원이었는데, 현재 가격은 이보다도 60% 이상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는 토허구역 재지정이라는 규제 강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강남구 부동산 시장이 독특한 흐름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강남구에 이어 양천구도 상당한 상승세를 보였다. 양천구의 평균 매매가는 14억2천275만원으로 일시 해제 기간의 13억1천953만원보다 7.8% 상승했다. 이는 목동 재건축 단지들의 가격 상승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목동은 오랫동안 서울 서남권의 대표적인 고급 주거지역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최근 재건축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투자 수요가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강남권과 양천구 외에도 일부 지역에서 가격 상승이 관찰됐다. 강북구는 해제 기간 6억1천613만원에서 재지정 후 6억6천140만원으로 7.3% 올랐고, 관악구는 7억7천809만원에서 8억226만원으로 3.1% 상승했다. 도봉구도 5억2천189만원에서 5억3천398만원으로 2.3% 증가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강북·관악·도봉구의 가격 상승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들 지역의 경우 오랜 기간 가격이 정체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이른바 '키 맞추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즉, 다른 지역의 가격 상승에 발맞춰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던 이들 지역의 가격이 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 부동산 시장의 전반적인 상승 기조 속에서 지역 간 가격 격차를 줄이려는 시장의 자동 조절 기능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강북구의 경우 최근 뉴타운 개발과 교통 인프라 개선 등으로 주거 환경이 크게 개선되면서 잠재적인 가치가 재평가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일부 지역의 상승세와는 대조적으로 서울 전체 평균으로 보면 토허구역 재지정 이후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 서울 전체의 토허구역 해제 후 평균 거래가는 11억659만원으로, 해제 기간의 14억9천792만원 대비 26.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토허구역 재지정이라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이 전반적으로는 가격 안정화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격 하락이 두드러진 지역으로는 서초구와 용산구를 들 수 있다. 서초구는 해제 기간 29억164만원에서 현재 22억1천417만원으로 약 7억원 가까이 내렸다. 이는 24% 정도의 하락폭으로, 해제 기간 중 과도하게 상승했던 가격이 조정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용산구도 현재 21억9천538만원으로 해제 전 24억7천290만원 및 해제 기간 23억5천776만원보다 모두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용산구는 용산국제업무지구(IBD) 개발과 한남동 재건축 등으로 주목받았던 지역이지만, 토허구역 재지정 이후에는 관망세가 확산되면서 거래량과 가격이 모두 위축된 상황이다.

송파구의 경우 현재 평균 실거래가가 18억9천151만원으로 일시 해제 기간의 18억7천899만원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해제 기간 중 급등했던 가격이 재지정 이후 안정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강남구와 양천구의 가격 상승 배경에는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토허구역 해제 기간 중 서초구와 송파구 등의 신축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자, 상대적으로 가격 메리트가 있는 강남권 재건축 단지로 수요가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종의 '풍선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신축 아파트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구매 능력이 있는 수요자들이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그 대안으로 재건축을 통해 신축 수준의 주거 환경을 확보할 수 있는 단지들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특히 강남구의 압구정동과 양천구의 목동은 오랫동안 서울의 대표적인 고급 주거지역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수요 이동의 1차 수혜지가 되었다.

직방 빅데이터랩의 김은선 랩장은 "압구정동 등 원래 토허제 해제 수혜가 없었다"면서 "압구정을 필두로 목동, 여의도 등 고가의 재건축 단지에서 사업 가시화와 희소가치 등이 부각되며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토허구역 재지정이 오히려 특정 지역의 재건축 단지에는 호재로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강남구와 양천구 재건축 단지 가격 상승에는 정치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최근 대선 후보들이 재건축 부담금 완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재건축 사업 가속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이다. 재건축 부담금은 기존 주택을 철거하고 새로운 아파트를 건설할 때 부과되는 비용으로, 이것이 완화되면 재건축 사업의 경제성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

KB국민은행의 박원갑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신축이 오르니 재건축 단지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고, 사람들이 이제 서울 안에 남은 알짜 땅은 재건축 단지뿐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며 "대선 후보들이 재건축 부담금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정책적 기대감은 단순히 부담금 절감 효과를 넘어서 재건축 사업 전반의 활성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재건축 부담금이 완화되면 조합원들의 추가 부담이 줄어들고, 이는 곧 재건축 추진 동력의 강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경제성 부족으로 사업 추진이 지연되었던 단지들의 경우 이번 기회에 재건축 사업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압구정동, 목동, 여의도 등 고가 재건축 단지들의 가격 상승은 이들 지역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입지 프리미엄과 희소가치가 재조명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지역은 서울 내에서도 최고급 주거지역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교통 접근성, 교육 환경, 생활 인프라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압구정동의 경우 강남 3구의 핵심 지역으로서 브랜드 가치가 매우 높고, 목동은 서울 서남권의 대표적인 계획도시로서 체계적인 도시 설계와 우수한 교육 환경을 자랑한다. 여의도는 금융 중심지로서의 상징성과 한강변 입지라는 자연환경적 장점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입지적 우수성은 재건축을 통해 새로운 아파트로 탈바꿈할 경우 그 가치가 더욱 극대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최근 완공된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들의 경우 분양가가 평방미터당 5천만원을 넘어서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어, 이러한 기대감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토허구역 재지정 이후 나타난 지역별 가격 양극화 현상은 서울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시사하는 중요한 신호로 해석된다. 과거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 전반에 비교적 균등하게 영향을 미쳤다면, 이제는 지역별, 단지별로 차별화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서울 부동산 시장이 과거보다 훨씬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수요자들이 단순히 아파트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입지, 브랜드, 향후 가치 상승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향후 부동산 정책 수립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서는 일률적인 규제보다는 지역별, 유형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토허구역 재지정이라는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에서 가격 상승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기존의 정책 접근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함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지역별 가격 양극화 현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여러 변수에 달려 있다. 우선 대선 결과와 그에 따른 부동산 정책 방향이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재건축 부담금 완화 공약이 실제로 이행될 경우 재건축 단지들의 가격 상승세는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신축 아파트 공급 상황도 중요한 변수다. 현재의 '얼죽신' 현상이 신축 공급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향후 신축 공급이 늘어날 경우 재건축 단지로의 수요 이동 현상은 완화될 수 있다. 반대로 신축 공급이 계속 제한될 경우 재건축 단지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 환경의 변화도 주목해야 할 요소다. 현재 상승하고 있는 금리가 부동산 시장 전반의 수요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고가 재건축 단지의 가격 상승세에도 제동을 걸 수 있다. 특히 고액 거래가 많은 강남권의 경우 금리 상승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현재 나타나고 있는 서울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 현상은 정책, 공급, 수요, 금리 등 다양한 요인들의 복합적 상호작용의 결과다. 이러한 복잡한 역학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향후 부동산 시장 안정화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