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 법안에 대한 재정적자 확대 우려가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21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가 모두 1% 이상 하락해 한 달 만에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816.80포인트(1.91%) 내린 41,860.44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95.85포인트(1.61%) 하락한 5,844.61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270.07포인트(1.41%) 떨어진 18,872.64로 각각 거래를 마쳤다.

최근 한 달간 빠른 회복세를 보여온 뉴욕증시가 이처럼 급락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 법안의 의회 통과를 위해 공화당 강경파를 압박하면서 재정적자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26일부터 시작되는 메모리얼데이(현충일) 의회 휴회에 앞서 트럼프 감세안 연장과 확대를 골자로 한 이른바 '하나의 아름다운 법안'(메가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하원 처리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미 의회 합동조세위원회(JCT)가 메가 법안 초안을 분석한 결과는 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위원회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향후 10년간 연방정부 재정적자를 2조5천억 달러(약 3천440조원) 이상 증가시킬 것이라고 추산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재정적자 확대 전망은 최근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조치와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의 우려를 더욱 키웠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지난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강등하면서 재정적자 악화와 정부부채 증가를 주요 사유로 제시한 바 있다.

시장의 우려는 구체적인 지표로 나타났다. 이날 오후 실시된 20년 만기 미국 국채 입찰에서 수요가 예상보다 크게 저조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미국 국채 수요 감소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20년물 입찰 결과가 발표된 후 국채 시장에서는 투매 현상이 이어졌다. 이는 미국 국채 수익률의 급등을 촉발했고, 주식시장도 동반해 하락폭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전자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3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이날 미국 증시 마감 무렵 5.09%로 전장 대비 12bp(베이시스포인트, 1bp=0.01%포인트) 급등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도 같은 시간 4.60%로 전장 대비 12bp 상승했다.

이러한 국채 수익률 상승은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온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감세안 통과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가 미국 국채의 안전자산 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악재가 겹쳤다. 애플은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아이폰을 디자인한 애플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의 인공지능(AI) 기기 개발 스타트업 'LoveFrom'을 인수한다는 소식에 2.31% 하락했다. 이는 애플의 AI 전략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 최대 건강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는 HSBC가 투자 의견을 '보유'에서 '축소'로 하향 조정하면서 5.78% 급락했다. 이는 헬스케어 섹터 전반의 부진을 상징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됐다.

시장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CFRA리서치의 샘 스토발 수석 투자전략가는 이날 CNBC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은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부채를 줄이기 위해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토발은 또한 "이런 우려가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시장이 정부의 재정 정책에 대해 신뢰를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정책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긍정적 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특히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국제 투자자들의 미국 국채에 대한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메가 법안의 의회 통과 여부와 관련해서는 공화당 내부에서도 재정 보수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제기되고 있어 향후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존슨 하원의장이 설정한 26일 이전 통과 목표가 달성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미국 국채 수익률 동향과 재정적자 관련 정책 발표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방향성과 함께 재정정책이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 증시의 급락과 국채 수익률 상승은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 국채는 전 세계 금융시장의 기준금리 역할을 하고 있어, 수익률 상승은 각국의 자본 유출과 통화 약세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도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국제 경제 질서의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감세 정책과 재정 건전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나갈지, 그리고 의회가 메가 법안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향후 금융시장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