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상대측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30일간 중단하기로 한 미러 정상 합의의 후속 협상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관련 당사국 간 이견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부분 휴전안의 세부 내용을 정하는 과정에서 휴전 대상 범위, 군사 지원 지속 여부, 원전 소유권 등 다양한 쟁점이 부각되면서 합의 이행에 복잡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협의를 통해 '부분적 휴전안'에 합의했다.
이어 19일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해당 안건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정상들 간의 합의 이후 다음 단계는 후속 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공격 금지 대상을 포함한 휴전안 문안을 작성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최종 합의와 이행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후속 협상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주요 쟁점들을 둘러싼 당사국 간 입장 차이가 드러났다.
우선 러시아가 트럼프-푸틴 통화에서 요구한 대(對)우크라이나 군사 및 정보 지원 중단 문제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 간 견해 차이가 즉각 표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한 미국의 정보 공유를 지속하겠다고 약속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의 패트리엇 방공미사일 시스템 지원 요청에 대해서도 협력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에서 "키이우 정권에 대한 무기 공급은 평화를 이루고 모든 것을 정치적·외교적 해결에 부합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를 선언한 것에 어긋난다"고 반발했다.
비록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의 대(對)우크라이나 무기 및 정보 지원 중단을 '부분 휴전'의 전제조건으로 명확히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향후 협상 과정에서 이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휴전 대상 범위를 둘러싼 미러 양측의 발표 내용 차이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18일 미러 정상 통화 후 미국 측은 부분 휴전의 대상을 "에너지와 인프라"로, 러시아 측은 "에너지 인프라"로 각각 발표했다.
이튿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이 "에너지와 인프라"가 정확한 합의 내용이라고 재확인하자,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각 당사국에 더 중요한 사안과 덜 중요한 사안이 있다"며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정유 시설, 송유관, 원전 등을 의미하는 '에너지 인프라'에 비해, 철도, 도로, 교량 등 민생 인프라까지 포함하는 '에너지와 인프라'는 훨씬 광범위한 개념이다.
따라서 최종 합의 도출 과정에서 이 차이가 상당한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유럽 최대 규모인 자포리자 원전의 소유와 운영 문제도 새로운 갈등 요소로 등장했다.
원래 우크라이나 소유였으나 현재는 러시아 점령지 내에 위치한 이 원전에 대해 미국이 관심을 표명하자 우크라이나는 즉각 반대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한 뒤 "미국이 전력 및 유틸리티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원전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은 미국의 우크라이나 원전 소유가 우크라이나 인프라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 "모든 원전은 우크라이나인의 것"이라며 "미국 측과 소유권을 논의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인 2022년 3월 4일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했으며, 이 원전의 실질적 운영·통제권은 우크라이나 국영기업 '에네르호아톰'에서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으로 이전된 상태다.
이러한 다양한 이견들이 후속 실무 협상에서 어떻게 조율될 수 있을지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부분 휴전 성사 여부를 결정할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미국과 러시아 측 발표를 종합하면, 오는 24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한 실무급 3자 협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특사인 키스 켈로그는 20일 리야드 협상에서 미국 측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을 별도의 공간에서 잇달아 만나며 협상을 중재하는 '근거리 셔틀외교'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트럼프-푸틴 통화를 계기로 부상한 '30일간 부분 휴전안'의 실현 전망은 이번 3자 협의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러시아가 '부분 휴전안'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중재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고 '공'을 우크라이나 쪽으로 넘기기 위해 '합의'의 흉내만 낸 것인지는 후속 협상에 임하는 러시아 측 대표단의 태도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