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브뤼셀 나토본부에서 열린 나토 외교장관 회담 [자료사진=연합뉴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외무장관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종전 의지에 강한 의구심을 표명했다.
미국 대표단과 푸틴 대통령의 회담 직후 열린 나토 외무장관 회의에서 각국 외교 수장들은 러시아의 진정성에 대해 일제히 회의적 입장을 드러냈다.
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외무장관 회담에서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푸틴 대통령이 협상에 임하려는 실질적 의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유럽과 유럽-대서양 안보를 계속 약화시키길 원하며, 나토의 방어 태세를 시험하고 동맹을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베트 쿠퍼 영국 외교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오히려 고조시키려 한다며, 허세와 유혈사태를 중단하고 협상 테이블로 나와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우크라이나 평화와 유럽, 나토의 안보를 지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르쿠스 싸흐크나 에스토니아 외교장관도 푸틴 대통령이 경로를 바꾸지 않았으며 전장에서 더 공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강조하며, 그가 어떤 종류의 평화에도 이르길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엘리나 발토넨 핀란드 외교장관은 현재까지 침략자인 러시아 쪽에서 어떤 양보도 하지 않았다며, 신뢰 구축을 위한 최선의 방안은 전면적인 휴전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라고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전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푸틴 대통령과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특사의 회담 내용은 양측이 비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영토 양보 문제 등 핵심 사안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크렘린궁은 이 협상에서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종전안 중 일부만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협상에 앞서 한 투자 포럼에 참석해 유럽이 러시아와 싸우고 싶어 한다면 러시아는 지금 당장 준비가 되어 있다며 유럽을 향해 위협적 발언을 했다.
상당수 유럽 국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 우크라이나를 넘어 유럽 국가들을 스스럼없이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뿐 아니라 유럽연합 본부가 위치한 브뤼셀 등 서유럽 도시들까지 러시아가 배후로 의심되는 드론들이 시시때때로 출몰하고 있다. 사보타주(파괴공작)도 빈번해져 유럽 전역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회의장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가 내년에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무기 조달을 위해 나토 회원국들이 매월 10억 달러(약 1조4천700억 원) 이상을 미국산 무기 구입 비용으로 지출해야 한다며 회원국들의 추가 기여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우방국들이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 유지되도록 군사 지원을 계속 제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평화 회담이 진행 중인 것은 좋은 일이지만, 회담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우크라이나가 전투를 계속 이어가며 러시아에 반격할 수 있는 최대한 강력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 캐나다, 독일, 폴란드, 네덜란드는 미국산 무기를 구입해 우크라이나에 기부하기 위해 4개국이 합쳐 수억 유로를 쓸 것이라고 발표해 뤼터 사무총장의 요청에 화답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정부는 미국산 무기의 우크라이나 직접 기부를 허용하지 않고,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직접 팔거나 나토 동맹국에 구입하게 한 뒤 이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바이든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나토의 중심축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도했던 미국은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지금까지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졌다며 나토 동맹국들에 국방비 대폭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나토를 홀대하는 기류를 반영하듯, 이번 나토 외교장관 회의에는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대신 크리스토퍼 랜도 부장관이 참석했다.
앞서 뤼터 사무총장은 전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루비오 장관과 긴밀히 연락하고 있다며, 그동안 나토 외교장관 회의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인 미국 외교 수장의 불참에 대해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안을 비롯해 미국 주도로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군사억지력 강화 방안 등 현안이 논의됐다.
나토 회원국들은 러시아의 공세적 태도와 유럽 전역에 대한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결속을 다지는 한편,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인 군사 지원 의지를 재확인했다.
[힐링경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