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매장 [자료사진=연합뉴스]

국내 유통업계가 매물 급증과 M&A 시장 침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불황이 지속되면서 대형마트부터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유통기업들이 매각에 나서고 있지만, 인수 의사를 밝히는 투자기관이나 기업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내수 부진과 전자상거래 성장, 인구 감소 등으로 국내 유통업이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점이 자리하고 있다. 더욱이 급변하는 유통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 발굴이 어려워지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1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유통기업들이 M&A를 통한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 3월 기업회생 절차를 개시한 홈플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홈플러스는 임직원의 고용 보장과 협력업체의 영업 보호 등을 위해 외부 자금 유입을 추진하기로 하고 지난 6월부터 회생 계획 인가 전 M&A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인수 의사를 밝힌 주체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서울회생법원은 M&A 추진 계획을 담은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을 오는 11월 10일로 두 달 연장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마트와 롯데마트·슈퍼가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두 기업 모두 홈플러스 인수에 난색을 표했다.

소비 심리 위축 등으로 국내 사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국내 사업에서는 기존 매장 리뉴얼을 통한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마트는 국내 점포 수를 2019년 125개에서 이달 기준 112개로 13개를 줄이며 축소 경영을 펼치고 있다. 쿠팡 역시 업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홈플러스 인수를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를 인수하겠다는 사업자가 수개월째 나타나지 않자, 노조와 시민단체들은 지역경제 붕괴와 실업자 양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 투자 및 경영 실패 기업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홈플러스 사태가 국민 실생활에 밀접한 만큼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하겠지만, 공적 자금 투입에는 근본적으로 반대한다"며 "홈플러스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이고, 지금의 사태는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공적 기능이 있는 농협경제지주가 인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농협경제지주는 "홈플러스 인수를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농협 역시 유통 분야에서 매년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어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농협의 양대 유통 조직인 농협유통과 농협하나로유통의 작년 순손실은 각각 352억원, 398억원으로 전년(288억원, 310억원)보다 증가했다.

최근까지 성장세를 보여온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매물이 쌓여가고 있다. 지난해 7월 대규모 미정산·미환불 사태를 초래하면서 회생절차를 밟아온 위메프는 1년째 새 주인을 찾지 못해 사실상 파산 수순에 들어갔다.

위메프가 회생계획안을 기한 내 제출하지 못하자 지난 9일 서울회생법원은 회사의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앞서 치킨 프랜차이즈 제너시스BBQ가 위메프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했지만, 실제 인수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위메프와 함께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인터파크커머스 역시 인수자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월에는 푸드테크 스타트업 정육각과 유기농 식품판매 업체 초록마을이 회생절차를 개시해 지난달 법원에서 인가 전 M&A 허가를 받았다. 두 기업은 6개월 내 인수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온라인 명품 플랫폼 발란은 기업회생 절차를 밟으며 회생 계획 인가 전 M&A를 추진해오다 지난달 조건부 인수예정자로 '아시아 어드바이저스 코리아'(AAK)를 찾았다. 이달 입찰에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업체가 없으면 AAK가 최종 인수자로 확정된다.

회생절차 기업과 별개로 매각을 추진하는 유통업체도 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11번가는 수년째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나,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새벽배송 전문기업 오아시스가 인수 여부를 타진했지만,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커머스 시장 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작년 1300k(천삼백케이), 바보사랑, 알렛츠 등이 폐업했다. 이런 가운데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의 진출로 국내 플랫폼 기업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위기에 처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격변기를 맞자,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2월 알리바바그룹과 합작법인(그랜드오푸스홀딩) 설립을 결정했다. 합작법인에는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가 자회사로 편입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업황을 고려하면 시장에 나온 유통기업들이 새 주인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종우 교수는 "오프라인 시장은 위축됐고 온라인 시장 성장세도 둔화하는 등 국내 유통 시장 성장은 어느 정도 멈춘 상황"이라며 "미래가 불투명해 투자기업들은 유통기업 인수에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역시 "국내 내수 시장의 다운사이징(규모 축소)이 본격화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성장하는 시장에서는 매수자가 나타날 수 있지만, 업황과 업태를 고려하면 매물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힐링경제=윤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