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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치매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운전에 어려움이 있는 이른바 '고위험 운전자'를 대상으로 '조건부 운전면허제' 도입을 본격 검토하고 있다. 이는 고령화 사회 속에서 교통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고, 운전자의 안전은 물론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9일 경찰청이 서울대학교에 의뢰해 진행한 '조건부 운전면허제도 개선을 위한 운전 능력 평가 시스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진은 기존 운전면허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핵심은 고위험군에 대한 면허 제한과 보다 정밀한 운전 능력 평가 시스템의 구축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내용은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이다. 이 제도는 치매, 인지 저하, 또는 기타 신체적 질환으로 인해 전면적인 운전 금지는 아니지만 일부 상황에서의 운전이 위험한 운전자에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야간 운전이나 고속도로 운전은 제한하고, 낮 시간대의 제한된 구간 운전만 허용하는 식이다. 이는 운전자의 최소한의 이동권은 보장하면서도 대형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또한 보고서는 ‘제3자 신고제’ 도입도 함께 제안하고 있다. 이는 운전자의 상태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직계 가족이나 의사, 경찰 등이 직접 수시적성검사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현재 대부분의 적성검사는 정기적으로만 이루어지며, 본인의 신고나 갱신 시점에만 문제가 확인되는 구조다. 하지만 치매나 뇌졸중 같은 질환은 갑자기 진행되거나 급격히 악화될 수 있어, 제3자의 조기 개입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와 더불어 연구진은 고위험 운전자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는 주로 고령 운전자나 치매 환자 중심으로 관리되어 왔지만, 심근경색, 뇌졸중, 수면장애 등 운전 시 위험을 유발할 수 있는 각종 신체 질환까지 포함해 관리 대상을 넓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경찰청은 이번 보고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관련 부처 및 전문가들과 협의 과정을 거쳐, 조건부 면허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와 도입 시기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운전이 단순한 개인의 자유가 아닌 공공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제도의 실효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한 정교한 운전면허 관리 체계가 요구되고 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운전자들의 건강과 인지 능력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이번 조건부 운전면허제 도입 검토는 ‘안전 운전’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 체계 강화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힐링경제=하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