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기후대응·인권 내세웠지만 경제에 발목

힐링경제 승인 2022.06.22 10:58 의견 0

환경과 인권을 기치로 내걸고 지난해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경제 위기로 휘청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자료=연합뉴스]

4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격한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주가가 폭락하고 자산시장이 붕괴하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바이든 대통령은 고유가와 물가 상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탓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많은 미국 유권자들은 바이든의 정책이 문제라는 인식을 보여 11월 중간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의 패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해 1월 20일 파리 기후변화협약 복귀와 캐나다산 원유를 미국으로 수송하는 '키스톤 XL' 송유관 사업 철회 등 15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재임 중 각종 논란을 무릅쓰고 시행한 정책을 뒤집은 것이어서 트럼프 시대와 단절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됐다.

기후변화 대응보다는 경기 활성화를 우선시했던 트럼프와는 정반대로 환경을 중시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기도 했다.

이후 바이든은 미국 연방정부 소유의 토지와 연안에서 새로운 석유와 가스 시추를 중단하는 행정 조치에도 서명하면서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석연료와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환경 대통령'을 표방한 바이든의 운명은 고유가로 촉발된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으로 풍전등화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동월보다 8.6% 급등했다. 4월(8.3%)보다 오름폭이 커진 것은 물론 지난 3월(8.5%) 지수를 넘어 1981년 12월 이후 최대폭 상승이었다.

소비자들의 생활과 직결된 휘발유 가격은 1갤런(3.78L)당 5달러를 넘어섰다. 코로나 전염병 대유행 기간 2달러 안팎까지 떨어졌던 상황과 비교하면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미국 유권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USA투데이와 서포크대가 미국 성인 1천 명을 상대로 조사해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39%까지 하락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면서 바이든의 지지율은 속수무책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같은 날 야후뉴스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조사에서는 바이든이 차기 대선 가상대결에서 트럼프에게 뒤진다는 결과도 나왔다.

야후뉴스와 유고브가 지난 10∼13일 미국 성인 1천541명을 상대로 조사해 이날 내놓은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선 가상대결에서 응답자의 42%가 바이든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고, 44%는 트럼프를 찍겠다고 답한 것이다.

비록 오차범위(±2.9%포인트) 내의 결과이긴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수치상 앞선 것은 야후뉴스·유고브 조사에서는 처음이다.

특히 응답자의 61%가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운용 방식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역시 3주 전 조사(58%)보다 더 나빠진 수치다.

바이든과 그의 각료들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빅스텝' 인상 등 각종 인플레 억제 정책이 약발이 안 먹히자 '남 탓 공세'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이든은 지난 10일 연설에서 석유회사인 엑손모빌에 대해 "지난해 하느님보다 돈을 더 벌어들였다"며 고유가의 주범이 석유회사라는 듯한 발언을 했고,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물가 상승의 원인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내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매제가 된 건 사실이지만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가 아직 안정적인 전력원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급격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에너지 수급 불안 사태를 초래했고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의 폭등을 불렀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전력망이 불안정해진 배경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이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치솟은 에너지 가격도 민주당의 반(反) 화석연료 캠페인을 저지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환경과 함께 바이든 행정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기치가 인권이다.

전임자인 트럼프가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 북한 등 인권 후진국 지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과 차별화한 노선이기도 했다.

바이든은 취임 직후부터 중동에서 미국의 오랜 우방이던 사우디를 인권을 문제 삼아 경원시했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2018년 발생한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배후라며 그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국제무대에서 그를 '투명인간' 취급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주요국의 급격한 탄소중립 정책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유가가 치솟고 인플레이션이 가속한 상황에서 자충수가 됐다.

WSJ 등에 따르면 바이든의 의도적 홀대에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빈 살만 왕세자는 유가 급등세를 잡기 위한 미국 정부의 원유 증산 요청을 여러 차례 거부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사진자료=연합뉴스]

유가 안정에 협조해달라는 바이든의 통화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사실상 주도하는 사우디의 비협조는 고유가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으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바이든을 더욱 궁지로 몰았다.

뒤늦게 빈 살만과의 화해를 모색한 바이든은 다음 달 중순 사우디를 방문할 예정이지만 OPEC의 추가 증산 등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미국 내에서는 바이든의 사우디 방문과 빈 살만 회동을 계기로 그의 인권 우선 외교정책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로 칸나 민주당 하원의원은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MBS(빈 살만)에게 석유를 구걸하는 것으로는 (미국 내) 기름값을 낮추지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많은 전문가는 바이든 행정부가 물가를 잡지 못하면 11월 중간선거 패배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중간선거가 빠르게 다가오면서 미국 유권자들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과 집권당은 정치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시 선임고문을 지낸 댄 파이퍼는 폴리티코에 "민주당이 직면한 정치 환경은 살벌하다"며 "높은 식료품 가격과 기름값보다 더 정치적으로 고통스러운 경제 이슈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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