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6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KB국민은행 광화문종합금융센터를 방문해 직원으로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 관련 현황을 듣는 모습(제공=금융위)
지난 25일 시작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시행으로 펀드 판매 절차가 길어지고 까다로워지자 판매사와 고객 모두에게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은행은 온라인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 고객이 많은데다, 대출 전후 1개월간 펀드나 보험 상품 판매까지 금지돼 수익에 타격을 입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소법 시행 6일차를 맞는 각 금융회사 펀드판매 창구에서 고성과 한탄이 교차하고 있다.
기존에 30분 정도면 투자자성향진단부터 펀드상담, 가입까지 가능하던 것이 현재는 2~3배 늘어난 시간을 요하게 됐기 때문이다.
금소법이 시행됐다고 해서 절차 자체가 크게 바뀐 부분은 없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 상품가입 7~15일 이내 가입 철회가 가능해졌고, 판매사가 판매규제를 어길 시 계약일로부터 5년 이내 계약 해지가 가능해졌다. 특히 펀드 불완전판매시 항상 쟁점이 되는 손해배상 입증책임이 판매사로 넘어가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금융사가 고의 또는 과실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객에게 정확한 설명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각 항목 하나하나에 대해 명확히 고객이 이해했다는 녹취를 남기는 과정에서 웃지못할 촌극이 발생하고 있다. 고객 입장에선 다 알아듣지도 못할 설명을 듣고 “그렇게 말했다”는 증빙을 남겨줘야 하는 ‘의무 아닌 의무’가 발생한다.
서대문역 사거리에 위치한 한 증권사 객장에서 펀드를 가입하고 나온 A씨(독립문 거주, 65세)는 “고객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알겠으나, 어차피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는 대부분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고, 한시간 넘게 떠드는 말을 집중해서 들을 사람이 어딨냐”며,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증권사만 도망갈 사유를 만들어주는 거 같아 오히려 더 불쾌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처럼 변하자 가뜩이나 공모펀드 인기가 직접 주식투자에 밀리는 상황에서 고객 연령층이 상대적으로 증권사보다 높은 은행들의 마음은 더 바빠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담당 차장은 “펀드를 가입하시겠다고 해서 순서를 기다리다 지쳐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나이드신 고객분들은 비대면 가입도 권하기 어려워 자칫 펀드가입 고객이 줄지 않을 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처럼 대출상담을 오신 고객에게 펀드와 방카(슈랑스) 상품도 권할 수 없게 돼, 본점에서는 투자상품 판매를 독려하고 현실은 따라주지 않아 고민”이라며, “펀드에 가입하려는 고객에게 혹시 조만간 대출받으실 의향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웃지못할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불만을 터뜨리는 은행들의 입장에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지금의 상황은 사모펀드 사태에서도 보듯 판매에 전문성이 부족한 직원들에게 무리하게 펀드 판매 실적을 강요한 은행의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금융투자협회가 공시한 지난 2월말 기준 각 금융권별 펀드 판매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공모펀드 판매액은 219조7168억원으로 이중 증권사 비중은 44.41%, 은행 비중은 47.93%로 은행이 좀 더 많은 판매액을 보인다.
시간을 되돌려 5년 전인 2016년 2월말 기준으로 살펴보면, 전체 공모펀드 판매액은 219조8382억원으로, 이중 증권사 비중은 55.28%인 121조5252억원, 은행 비중은 86조4121억원으로 39.31%에 그쳤다. 5년 사이 공모펀드 판매 규모는 제자리에 머무는 사이 증권사와 은행의 판매 규모가 역전됐음을 알수 있다.
한 시중은행 PB센터장은 “은행권이 비이자이익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은행 내에 펀드판매사 자격증 취득이 붐을 이뤘다”며, “은행의 경우 상대적으로 대출이나 뱅킹 업무 등을 위해 직접 방문하는 워크인(Walk-In) 고객이 많다 보니 자연스러운 펀드권유가 좀더 용이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것은 주식형펀드와 파생형펀드 판매액이다.
지난 2월 기준 증권사의 공모 주식형펀드 판매액은 전체 30조8229억원의 43.95%로 전체 판매비중 44.41%보다 소폭 내려가지만, 은행의 공모 주식형펀드 판매비중은 49.48%로 오히려 올라간다. 특히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큰 파생형 펀드의 판매액 비중은 전체 9조4760억원 중 증권사 비중이 36.35%에 그치는 반면, 은행 비중은 60.36%로 껑충 뛰어오른다.
한 대형 증권사 WM팀장은 “상대적으로 은행 고객들의 경우 증권사 고객보다 연령층이 높은 경우가 많고, 증권사 고객이 좀더 위험을 감수하고도 높은 수익률을 지향하는 고객이 많다”며, “은행이 증권사보다 주식형이나 파생형 펀드 판매액 비중이 높다는 것은 자칫 불완전판매의 가능성이 더 높아질 개연성을 내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금융소비자재단이 지난 2월 발표한 2020년 펀드판매회사 평가 종합순위를 살펴보면, 은행(10곳), 증권사(17곳), 보험사(1곳) 등 총 28개 판매사의 평가결과 주요 은행들이 모두 최하위로 평가되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최하등급인 C등급으로 평가된 회사 중 4개사는 3년동안 C등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업, 우리, 하나은행은 2015~2020년까지 6년간, SC제일은행은 2017~2020년까지 4년간 C등급을 유지했다. 2020년 C등급을 받은 8개사 가운데 7개사가 은행권이었다.
재단 관계자는 “특히 은행의 경우 평균 지점수나 공모펀드 판매액을 고려할 때 투자자보호에 미치는 영향이 큼에도 투자자의 투자성향과 맞지 않는 상품을 권하는 적합성의 원칙과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고위험 상품 가입을 원하는 투자자에게 적절한 주의와 경고를 하는 적정성 원칙에서 아쉬움이 컸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행 초기이니 만큼 판매자의 제도와 프로세스에 대한 숙지가 좀더 필요하고, 투자자들도 시행의 취지에 공감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다만 저금리 고착화로 투자상품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은 커지고 금융이해력은 부족한 상황에서 절차적 불편함을 이유로 제대로 된 과정 이행을 게을리 할 때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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